혹시 요즘 영화 보러 가셨다가 ‘내가 이 돈 내고 이걸 보려고?’ 하는 생각, 해보신 적 있으세요? 아마 고개를 끄덕이셨다면 저랑 똑같은 마음이셨을 겁니다. 사실 저도 극장 가는 발걸음이 예전 같지 않아 마음이 썩 좋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최휘영 씨가 문체부 장관이 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세상에 말들이 어찌나 많던지! 야놀자로 유명한 '놀유니버스' 대표 출신이라니, 솔직히 좀 의외였죠? 보통은 영화, 연극, 출판처럼 문화 예술 분야에 잔뼈 굵은 분들이나 최소한 문화계와 긴밀한 인연이 있는 국회의원이 장관이 되곤 했으니까요.
이번에 관광업계, 그것도 플랫폼 사업자 출신 장관이 나왔다는 건, 아무래도 정부가 관광 산업에 제대로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싶어요. '문화체육관광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문화, 체육, 관광 모두를 아우르는 부처이긴 하지만, 사실 관광 쪽 인사가 장관 자리에 오른 건 꽤 이례적인 일이었거든요.
"문화 예술인만 장관 하란 법 있나요?" 삐딱한 시선, 글쎄요?
그런데 이 인사를 두고 문화계 몇몇 분들이 볼멘소리를 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님은 "300조 원 운운은 실망스러운 레토릭으로 문화에 시장 경제 만능주의 개념을 끼얹은 저 발언이 사실 무섭기까지 하다"고 일갈하셨고, 최광희 평론가님도 한국 영화 산업의 복잡한 구조를 이해할 전문성이 있는지를 지적하며 비판하셨죠. 영화 좀 본다 하는 분들이라면 두 분 이름은 다 아실 겁니다.
음, 그런데 솔직히 전 두 분의 시선이 좀 편협하다고 느낍니다. 문체부 장관은 문화, 체육, 관광, 이 세 가지를 모두 총괄해야 하는 자리 아닌가요? 관광 쪽에 좀 더 무게를 둔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싶어요. 다른 분야 장관이라고 그 분야를 100% 다 이해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좋은 차관이나 실무진을 옆에 두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이해 안 가는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왜 한국 영화 산업의 붕괴 책임을 정부에 돌리려 할까요? 물론 지난 정부에서 독립영화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좋은 독립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은 건 뼈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영화 산업이 휘청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 탓이라기보다는 영화계 스스로가 만든 '자충수'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1억 관객 시대는 옛말... 지금 한국 영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한국 영화는 60년대 1차 부흥기를 거쳐 2000년대 초 2차 부흥기를 맞았죠. 특히 1998년부터 2004년까지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같은 지금 봐도 입이 떡 벌어지는 감독들이 쏟아져 나오던 그야말로 황금기였습니다. 롯데, CGV, 메가박스 같은 멀티플렉스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관객수도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늘어났고요.
그 결과, 2012년부터 2019년까지는 무려 8년 연속으로 연간 총 관객수가 1억 명을 넘기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1년에 영화를 두세 편씩 봤다는 얘기니, 정말 영화에 '미친' 나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추락하더니, 엔데믹이 된 지난해(2023년)에도 겨우 7천만 관객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문제는 올해(2024년)입니다. 7월 중순이 지난 지금, 고작 2천2백만 관객밖에 동원하지 못했어요. 이 추세라면 올해 5천만 명은커녕 4천만 명대도 어려울 거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고, 아마도 현실이 될 것 같네요. 저 민준도 예전엔 매주 개봉 영화를 챙겨보던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한 달에 한 편 볼까 말까 하거든요. (갑자기 눈에서 땀이… 아니, 눈물인가?)
솔직히 말해, 이런 영화들을 만들어놓고 무슨 1억 관객 돌파를 바라는 건 좀 염치 없는 일 아닌가요? 최근 <거룩한 밤 : 데몬헌터스>를 보면서는 ‘장난하나?’ 싶을 정도였어요. 무슨 영화 동아리 졸업 작품 수준의 만듦새에, 이건 거의 관객 모독이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엉성한 스토리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만 우겨 넣고, 마동석 배우 한 스푼 얹어서 대충 만든 티가 너무 나서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보고타>는 또 어떻고요? 아니, 이런 영화들을 만들어놓고 돈을 벌겠다고 하니,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돌이켜보면 한국 영화가 정말 재밌다고 느꼈던 시기는 1999년 <쉬리> 이후 2004년 정도까지가 아닐까 싶어요. 물론 2010년대에도 규모가 큰 할리우드급 블록버스터들이 꽤 나와 볼만한 영화들이 많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최근, 그러니까 코로나 이후부터 지금까지 박수 치고 볼 정도로 뛰어난 한국 영화는 박찬욱 감독님의 <헤어질 결심> 말고는… 글쎄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가 ‘이게 최선인가?’ 싶은 졸작들이 태반이더라고요. 아니, 시나리오는 갈수록 뒷걸음질 치고, 연출력도 '같은 감독 맞나?'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영화들이 정말 많아요. <소방관>도 딱 그런 영화 중 하나였죠. 이런 영화들을 만들고 흥행을 바라다니, 괘씸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화 관람료는 코로나 이후 40%나 올랐습니다. 평일 낮에 영화 한 편 보려면 1만 5천 원이나 내야 하는 시대가 됐어요. 그런데 영화의 재미는 오히려 40%는커녕 70% 정도는 더 재미없어진 것 같지 않나요? 이런 저질 영화들만 계속 만드는데 관객들이 등을 돌리는 게 당연한 가장 큰 원인이지, 무슨 영화 구조적인 문제를 따지고 있습니까? 배우들의 연기만 빼면, 영화 제작, 연출, 시나리오, 모든 게 뒤로 후진하고 있어요. 이건 영화계 안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아직도 한국 영화 감독 하면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감독을 논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갑자기 울컥하네요)
이창동 감독님은 제작비 지원도 못 받아서 넷플릭스가 지원해 줘 겨우 영화를 만들고 계신다죠? 이런 것까지 정부, 아니 문체부가 신경 써야 할까요? 스스로 공멸하고 자멸하고 있는 걸 정부가 어떻게 살려준다는 말인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딱 하나?
물론 정부와 국회가 함께 해야 할 딱 한 가지가 있긴 합니다. 바로 그 유명한 '파라마운트 법'을 한국에서도 시행하는 겁니다. 롯데시네마, CGV, 메가박스 같은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영화 제작, 배급, 상영까지 모든 과정을 수직 계열화하고 있잖아요? 재미없는 영화도 동시 개봉관을 잔뜩 잡아서 억지로 흥행을 쥐어짜니, 영화들이 죄다 개성 없이 찍어내는 공장 제품처럼 느껴지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이제는 한국 영화가 개봉해도 별 관심이 없어지고, 실제로 극장에 가는 발걸음도 점점 뜸해지는 거고요. 그러니 이 수직 계열화를 깨뜨리는 법, 즉 '한국판 파라마운트 법'을 만드는 것 말고는 문체부에서 할 수 있는 구조적인 개혁은 많지 않다고 봅니다. 끽해야 영화 할인 쿠폰이나 뿌리는 정도겠죠.
솔직히 영화관에 안 가도 쿠팡플레이에서는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고, 넷플릭스 5천 원만 내면 셀 수 없이 많은 드라마, 다큐, 영화를 볼 수 있는데… 굳이 비싼 돈 주고 재미없는 한국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갈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 붕괴의 원인은, 결국 영화인들과 자본이 합심해서 만든 폐허에 있습니다. 이걸 문체부 장관에게 의탁해서 해결해달라고 하는 건 염치 없는 일 아닐까요? 관객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트렌드는 변하고, 관객들의 눈높이는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졌거든요. 이제는 영화계 스스로 정말 반성하고, 오직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만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그게 바로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